아버지는 유단자

가족 2009/02/26 00:24
어릴 적 안방에서 아버지의 태권도 단증을 보고,
왕년에 태권도를 좀 하셨나 보다 정도만 생각했었다.

또, 유단자증 발행 일련 번호가 상당히 작은 번호여서
(100 근처였던 것 같다)
약간 신기하게 생각했다.

어느날 아버지와 둘이 버스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주셨다.

6.25 전쟁 즈음에,
어린 나이의 아버지는 대전역 근처에서 
조그만 규모로 길거리에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고 있었단다.

열심히 장사해도 먹고 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그 동네 양아치 한 놈이 아버지를 그리 괴롭혔단다.

물건뺐고, 돈뺏고 장사못하게 하고...

계속 당하다 열받은 우리 아버지...
그 양아치에게 실력(=힘)으로 복수를 다짐하게 되고,
그 당시 유행했던 "당수"를 배웠단다.

무술을 배우는 것을 당시에는 "운동한다"라고 했단다.

운동을 하게 되면서 나름 열심히 했고, 
유단자가 되었단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쓰는 전용 바지, 운동화 등의 복장에,
특히 유단자임을 알리는 뺐지(?) 등을 하고 
몇명이서 대전 시내를 다니게 되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피해다녔단다.

유단자가 되어도 그 양아치에게 복수할 자신이 없어서,
좀더 열심히 연마했고,
좀더해보자, 좀더해보자 하다가
마침내 더 높은 유단자가 되고 자신이 생겼닸다.
(아마 3단정도?)

자신이 생긴 아버지는
몇년전 그 양아치를 찾아다녔단다.

만나면
잡아서 요절을 내겠다고 한참 찾아다녔단다.

마침내...
길을 가는데
저기 반대편에서 그 양아치를 맞닥뜨렸단다.

그 놈을 끌고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가서

너 몇년전 이래저래 한 놈이지?

라고 물으니,

벌벌 떨면서 
(복장만 봐도 운동하는 사람인 줄 알아본다고 했다)
2-3살 아래인 아버지에게 존대말을 쓰며,
그런 적 없다며 살려달라고 싹싹 빌었단다.

아버지는 그 놈이 불쌍해서져서 그냥 풀어줬단다.

나중에 태권도가 창설되면서,
당수 단증을 태권도 단증으로 교체 발급해줬단다.
더 높은 단증인 5단증으로.
(그 후, 스포츠화되는 태권도를 보고 발을 끊으셨다고 한다)

안방의 태권도 단증은 아버지 젊은 날의 진한 흔적이었다.